2014년 1월 20일 월요일

화성

인간은 바보가 아니다. 오히려 매우 똑똑한 편이다. 그렇기에 인간은 우주로부터의 운석이 지표면에 충돌한다면 소규모이라 해도 괴멸적인 피해를 입힐 수 있음을 분명히 인지했고 그런 사태를 막기 위해 많은 준비를 해왔다. 수많은 망원경들과 슈퍼컴퓨터들은 다양한 혜성과 소행성들을 감지하고 궤도를 계산해 지구와의 충돌궤도상에 놓여있는지 검별했고 충돌궤도에 놓여있는 운석체들은 소규모의 함선을 보내 궤도를 비틀어 참사를 피했다.

그렇지만 아무도 예상치 못한 사태가 일어났다. 원래대로라면 화성을 살짝 스쳐지나갔을 소행성 '2041 YC'에 또다른 소행성 '2048 CB12'가 충돌하며 2041 YC의 궤도를 비틀어 달의 절반만한 크기를 가진 2041 YC가 화성과 충돌궤도에 놓이게 됬다. 2048 CB12는 2041 YC의 그림자에 숨어 충돌 직전까지는 관측조차 되지 않았었기에 그 누구도 그런 일을 예상하지 못했었다. 인간이 2041 YC의 궤도변경을 감지했을 때 이미 2041 YC는 화성과 충돌하기까지 60시간만 남은 상태였다. 새로운 궤도변경을 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부족했다.

2041 YC는 인류가 가진 모든 핵폭탄을 한꺼번에 터트린 것보다도 강한 위력으로 화성과 충돌했다. 다행히 2041 YC는 화성에 정면으로 충돌한 것이 아니라 살짝 비껴나가는 수준이였기에 화성이 쪼개지며 거대한 소행성들이 수십개씩 분열 돼 나와 지구와 충돌하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대신 훨씬 더 심각한 일이 발생했다.

화성이 지구와의 충돌궤도에 놓이게 된 것이였다. 그것도 빗겨나가는 수준이 아니라 완벽하게 정면으로 부딪히는 궤도. 그 사실이 처음으로 계산 된 날짜는 세계표준시로 2048년 4월 8일 17시 2분. 충돌예정날짜는 세계표준시로 2048년 8월 12일 0시 18분이였다. 

온갖 음모론이 지구를 뒤덮었다. 화성은 사실 외계 우주선이며 은박지 모자를 만들어 써야만 외계인으로부터 살아남을 수 있다는 화성교가 새롭게 창시 돼 세력을 떨쳤다. 하지만 화성교의 발호는 아무런 의미도 가지지 못했다. 아무리 세를 떨친다 해도 4개월 후에는 어차피 사라질테니.

수많은 혼란 끝에 8월 11일의 하루가 밝았다. 나와 극소수의 인류를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마취독약을 복용해 편안한 죽음을 맞이했다. 그들은 죽는다는 것도 느끼지 못하고 죽었을 것이다. 그저 편안한 꿈을 꾸다가 갑작스레 아무것도 없는 공허가 찾아왔겠지. 하지만 나는 마취독약을 복용하지 않았다. 나는 내가 죽는다는 것도 느끼지 못한채 죽고 싶지 않았다. 나는 나에게 죽음이 다가온다는 것을 생생하게 느끼며 당당하게 죽음을 맞이하고 싶었다. 어차피 죽을 것이라면 최소한 마지막 순간까지 당당한 것이 좋지 않겠는가? 최소한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나는 현재 태평양 한가운대를 항해중인 크루즈 함선에 탑승중이다. 이 크루즈에는 나를 포함 108명의 사람들이 타고 있다. 마지막 남은 인류 모두다. 물론 태평양에 관광을 하러 온 것은 아니다. 화성의 충돌예정지가 태평양이기에 태평양으로 온 것이였다. 화성과 지구가 충돌하는 모습을 두 눈으로 똑똑히 바라보기 위해서.

화성이 충돌하기를 기다리며 우리는 사치스럽게 최후의 만찬을 즐겼다. 우리는 한병당 10만달러는 쉽게 넘기는 고급 꼬냑으로 수영장을 가득 채워 수영했다. 우리는 송로버섯과 1958년산 샤또 슈발 블랑으로 불을 붙여 요리한 송로버섯을 먹었다. 하지만 과거에는 언제나 상상만 해왔던 사치들을 직접 부려보니 정작 별다른 흥이 돋지 않았다. 결국 우리 모두는 크루즈 꼭대기에 누워 조용히 하늘을 바라봤다.

하늘에는 그 무엇보다 어두운 암흑만이 존재했다. 얼핏 보면 밤처럼 보였지만 밤과는 매우 달랐다. 화성에 가려져 밤하늘을 비춰주는 달도 별도 빛나지 않았기에 하늘은 남색이 아니라 당장이라도 잉크가 뚝뚝 묻어날듯 진한 검은색이였다. 아니, 검은색이란 단어는 적합하지 않았다. 검은색도 빛이 있어야 보이는 색깔이였다. 단 한줌의 빛도 없어 아무것도 볼 수 없는 하늘은 검은색보다도 더 검은 암흑색에 뒤덮여 있었다. 지상에서 크루즈 함선이 세계에 남은 유일한 별처럼 너무도 애처롭게 홀로 빛났다.

그 너무도 순수한 암흑에 압도된 우리는 숨이 막혀 아무런 소리도 내지 못했다. 세상 그 무엇도 어떠한 의미를 가지지 못했다. 우리는 산채로 어둠에 잡아먹혔다. 우리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못했고 아무것도 행동하지 못했다. 그저 어둠 속에 존재할 뿐이였다. 마치 우주의 공허가 지상 위에 나타난 것만 같았다.

그때, 암흑이 사라졌다. 대신, 우리의 시야가 닿는 끝에서 끝까지 모든 하늘이 종말을 상징하듯 압도적으로 불타올르며 황혼처럼 아련한 붉은 빛을 비췄다. 온 세상이 화성의 붉은 빛에 물들었다. 크루즈 함선, 바다, 사람들, 온 세상이. 화성이 지구 대기와 마찰하며 불타올랐다.

화성의 화염은 종말적으로 불타오르며 나의 마음속에 남아있는 감정과 후회들을 하나씩 불태웠다. 살면서 저질러온 많은 실수들과 죄책감과 후회들이 하나하나 머릿속에서 지워지듯 사라졌다. 화성과 종말에 대한 공포, 절망, 허무감또한 머릿속에서 지워지듯 사라졌다. 나의 자아가 너무도 압도적인 아름다움 앞에 서서히 무너지며 사라져갔다. 화성의 마찰열에 달궈지는 대기를 견디기 위해 두터운 방열복을 입었건만 어째선지 나는 화성 앞에 벌거벗은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렇지만 의외로 발가벗은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좋았다. 나의 마음속에서 나 자신을 무거운 바위처럼 짓누르던 수많은 수치와 공포와 고통과 후회감이 모두 사라지고 오로지 나라는 사람으로서 홀로 존재하니 너무도 홀가분했다. 나는 그 해방감에 울었다.

나는 이제 정화 된 자로서 화성앞에 누워있다. 모든 것을 끝내기에 모든 것을 해방시키는 화성은 이제 5초 후 지표면에 충돌할 것이다. 화성은 이제 나를 죽일 것이지만 나는 오히려 화성이 고맙다. 화성은 나를 해방시켜주어 비록 1분이라는 짧은 시간뿐이지만 나 자신이 나 자신으로서 오롯이 존재할 수 있도록 해줬다. 만약 화성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나는 세상의 압박이 나를 뒤틀어 만들어낸 존재로서 살아갔을 것이다. 진정한 행복과 진정한 해방감을 절대로 누리지 못하며 그저 그런 인생을 그저 그렇게 살아가는 자. 화성은 나를 죽여 진정한 내가 살 수 있게 해줬다. 그러니 비록 지금 죽을지언정 어찌 좋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나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입가에는 미소를 띈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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