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8월 29일 월요일

대만의 새발견! 타이중 4박5일 스케치


단둘이 떠나본 게 얼마 만인가?
두 아이의 부모로, 며느리와 사위로, 조직의 구성원으로, 우리 자신이 아닌 누군가의 무엇으로만 살기 시작한 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아침에만 얼굴을 마주치는 사이, 어쩌다 잠깐 시간이 나도 각자의 세계에서 시간을 보내고, 아이 외에는 할 이야기가 없는 관계.
누구나 그렇게 살고 있고, 그 속에서 행복을 찾아야 한다고 말하지만, 딱히 위안이 되지 않는다.
그와 나는 가족이기 이전에 오랜 연인이었고, 마음을 나누는 절친이었며, 서로의 꿈을 응원하는 지지자였다.
우리는 조금 더 행복하기 위해 여느 해와는 다른 2014년을 계획해보기로 했다.
그리고 그 첫 실행은 둘만의 여행이었다.


대만의 새발견! 새해맞이 타이중 4박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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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타이완은, 특히 타이중은 내게 딱히 흥미로운 곳은 아니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던 타이베이와 지우펀이 전부인 줄 알았던 나라, 꽃보다 할배의 영향으로 갑자기 인기를 끌게 된 여행지,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버블티의 원산지, 그나마 끌리는 건 볼만한 야시장이 있다는 정도?
그러나 실제 여행을 떠나보니 타이완, 타이중은 그 자체로 4박 5일을 투자해도 모자랄 만큼 매력적인 여행지였다.
가이드북 뿐 아니라 인터넷에도 소개된 정보가 없어 처음에는 당황했지만, 그래서 오히려 찾아내는 재미가 있었던 곳~!
다닐수록 보고 싶은 곳이 많아지는 타이중으로의 4박 5일 여행, 지금부터 소개해 볼까 한다. 


Day 1. 타이중으로 (인천 - 타이중 공항 - 궁원안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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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11시 비행기를 타고 타이중 공항에 내린 시각은 2시 즈음. 숙소에 짐을 풀고 가장 먼저 향한 곳은 궁원안과(宮原眼科)였다.
옛 안과 건물을 사용해 과자점을 만든 궁원안과,  천정이 높은 실내는 유럽의 도서관을 옮겨놓은 듯 멋스러운 책장이 가득 차 있고
그 안에는 대만 특산품인 펑리수(鳳梨酥, 파인애플 과자)와 초콜릿, 차 등이 진열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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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원안과를 들르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찾는 필수코스 '일출(日出)' 아이스크림 전문점.
아이스크림도 맛있지만, 토핑으로 펑리수와 치즈 케이크 등을 얹어 먹을 수 있어 인기가 좋다.


Day 2. 타이중 시내여행 (타이중 공원 - 일중가 - 보각사 - 타이중 국립미술관 - 타이중 야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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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중이기도 하고, 날씨가 춥지 않으니 2013년의 마지막 날이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던 12월 31일.
하루를 어떻게 보낼까 고민하다가 이국에서 맞는 마지막 날이자 특별한 새해이니 카운트 다운 행사에 참여해보기로 했다.
오전에는 아직 결정하지 않은 내일과 모레 일정을 세우느라 난토우((南投)행 버스 터미널에서 시간을 보내고,
점심 무렵이 되어서야 일중가(一中街, 이중지에)로 이동해 근처의 신년맞이 행사장소를 확인하고 타이중 공원에 들를 수 있었다. 
타이중의 상징이기도 한 타이중 공원은 그 명성만큼이나 아름다웠다.
웨딩촬영을 나선 커플의 뒤를 쫓으며 잠시 옛 추억에 젖어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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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려 28m가 넘는 대형 미륵불이 있는 보각사(寶覺寺, 바오줴사)에서는 점괘를 뽑아보며 한 해를 점쳐봤다.
재미로 보는 점괘이지만 평탄한 한 해가 될 것이라니 왠지 안심.
숙소 근처에 있는 타이중 국립미술관(國立美術館)을 한바퀴 둘러보고 자정에 있을 새해 카운트 다운을 위해 잠시 휴식을 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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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 다시 찾은 일중가 야시장은 인파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가다 서다를 반복해야 했지만, 질서를 잘 지키는 사람들의 모습에 적잖이 놀랐다.
연말이라고 흥청대기보다는 연인, 가족과 함께 따뜻한 차를 마시며 새해를 맞이하는 그들의 건전함에 잠시 숙연해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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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파를 뚫고 우리가 찾은 곳은 타이중 야구장(台中棒球場).
10시가 넘은 시각이었고, 6만 명 정도의 사람이 모였는데도 운 좋게 가장 뷰가 좋은 곳에 자리 잡을 수 있었다.
한 시간 번 2013년, 이국에서 맞는 새해 첫날, 그리고 새로운 시작.
新年快樂(신녠콰이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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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로 돌아갈때는 버스가 끊겨 1시간 남짓을 걸어야 했지만, 그마저도 즐거웠던 새해 첫날.


Day 3. 타이중 근교여행, 일월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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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토우행 시외버스 타고 굽이굽이 일월담(日月潭, 르웨탄) 가는 길. 시내에서 30분만 나가면 영화 '쥬라기 공원'에나 나올법한 울창한 삼림이 나타난다. 고속도로가 무려 20m 상공의 고가라는 건 좀 무서웠지만 덕분에 대만 중부의 아름다운 산맥을 한눈에 내려다보며 해와 달을 닮은 에메랄드 빛 호수, 르웨탄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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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끊은 NT$680 티켓에는 타이중-일월담 왕복 버스 티켓과 일월담 내에서 사용할 수 있는 보트, 버스, 로프웨이 승선권이 포함되어 있었다. 일월담 인포메이션 데스크에서는 해당 티켓으로 다닐 수 있는 최적의 코스를 제안해 주기도 했다.
다양한 곳에서 아름다운 호수의 사진을 담아봤으나 내가 뽑은 일월담의 베스트 스팟은 단연 로프웨이 안~!
손잡고 호수 둘레의 고즈넉한 트레일을 걸으며 곳곳에 숨은 절과 비경을 찾아다니는 것도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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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와 달의 호수, 그래서인지 더욱 잊을 수 없는 르웨탄의 일몰.


Day 4. 타이중 예술 탐방 (타이중역 - 20호 창고 - 타이중 문화창의산업공원 - 시장관저 - 정명일가 - 봉갑야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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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와 비슷하게 일제 강점의 역사가 있는 타이완, 특히 타이중에는 당시 지어진 건물을 그대로 활용하는 곳이 많다.
과자점으로 리모델링 한 궁원안과, 음식점으로 활용하고 있는 옛 시장관사, 옛 모습 그대로 여전히 기차역인 타이중역.
아픈 흔적이지만 여행자에게는 살아있는 세계사의 한 장면이자 멋스러운 볼거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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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중역 뒤편에는 옛 기차 창고를 고쳐 만든 미술관, 20호창고(20號倉庫)가 있다.
20~26호 창고를 모두 미술관이나 작가의 공방, 작업실로 활용하고 있는데 좁은 골목을 누비며 예술가의 작업실을 훔쳐보는 재미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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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호 창고에서 10분 남짓 걸으면 오래전 와인과 곡주를 빚던 술 공장을 개조해 만든 미술관,
타이중 문화창의 산업공원(台中文化創意產業園區)이 나온다.
중국 베이징의 798 예술구를 연상케 하는 풍경이나 규모가 좀 작은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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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인 줄 알고 찾아간 곳에서 우연히 만난 주류박물관을 만났다. 애주가 부부가 이런 기회를 그냥 지나칠 리 없다.
타이완 술의 역사를 진지하게 공부하고는 고량주 테이스팅까지 했다. 이번 타이중 여행 일정 중 가장 재미있게 보낸 곳이 아니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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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발견의 연속이라고 했던가, 사실 이 날은 타이중 근교의 자연 휴양림인 '시토우'에 가기로 했던 날이다.
하지만 여행을 떠나기 전부터 시작된 며칠간의 강행군으로 컨디션이 좋지 않아 당일 아침에 일정을 급변경했다.
시내 구경이나 천천히 해보자며 관광안내센터에서 집어든 '타이중 버스여행' 책을 보다가 '20호 창고'와 '타이중 문화창의산업공원'을 발견했다. 미술관에 가기 전까지 절대 몰랐던 주류 박물관에서는 뜻하지 않은 고량주 테이스팅도 했다. 그리고 여기, 왜정시대의 타이중 시장관저(官邸花園餐廳)라고 스쳐봤던 곳이 레스토랑이라는 사실도 새롭게 알게 되었다.
며칠 전부터 훠궈가 먹고 싶던 나는 이 분위기 좋은 곳에서 정말 맛있는 관저식 핫팟(hot pot)을 맛볼 수 있었다.
남편이 주문한 한국식 핫팟에는 얼큰한 김치도 들어있어 며칠간 느끼했던 속이 확 풀리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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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완에는 워낙 버블티를 파는 곳이 많아 스킵할까 하다가 그래도 원조라니 궁금해 들른 정명일가(精明一街) 춘수당(春水堂).
평일 라지사이즈 15% 할인이란 말에 배가 부름에도 빅사이즈로 주문한 우리는 알뜰 여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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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중가의 야시장을 다녀와서 그런지, 아니면 평일이라 그런지 타이완에서 가장 큰 야시장이라는 봉갑야시장(逢甲夜市, 펑지아 야시장)은 생각보다 한산했다.


Day 5. 타이중 - 인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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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시 비행기, 현실로의 쉬프트를 2시간 앞두고...
지난 며칠간 잊고 지내던 고민과 해야할 일에 대한 부담이 한꺼번에 무거운 압박으로 다가오는 시간,
아마 이때가 여행중 가장 괴로운 순간이 아닐까 싶다.

지난 4박 5일을 돌아보니 타이중이라는 도시는 대만 중심의 산업 거점지로서 현재와 과거(일제 강점기)의 모습이 공존하는 흥미로운 곳이었다. 대만 중부 여행의 시작점이기도 해 르웨탄(일월담), 시토우, 아리산, 타이루거 등의 유명 관광지도 모두 타이중에서 준비해 다녀올 수 있었다. 
치안도 좋고 여행 인프라도 잘 구축되어 있어 관광안내센터에서 주는 지도와 가이드북, 버스 앱만 가지고도 대중교통으로 어디든 다닐 수 있었다. 게다가 버스카드를 이용하면 반경 8Km이내는 공짜~! 교통비가 들지 않는다는 건 여행지로서 정말 매력적인 요건이다.
같은 중국어를 쓰지만 중국과 타이완 사람들은 정말 다르다. 지방 도시인 타이중 사람들도 어찌나 친절하고 영어를 잘하는지~ 난 우스갯 소리로 '중국인의 얼굴, 일본인의 속내'라고 이야기하기도 했는데, 덕분에 중국어 한마디 못하는 나도 어렵지 않게 여행할 수 있었다. 겨울인 요즘의 타이중은 딱 여행하기 좋은 15~20도의 선선한 날씨, 버블티와 길거리 음식은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맛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든든하게 내 곁을 지켜준 남편과 함께 5년만에 단둘이 떠난 여행이라 더 좋은 기억으로 남았다.
바쁘다는 이유로, 손이 많이 가는 아이들을 챙겨야 한다는 이유로 꽤 오랜동안 서로에게 무관심하고 소홀했던 시간,
손바닥에 땀나도록 열심히 손을 잡고 여행했으니, 이제 우리는 더 단단한 믿음으로 오래 사랑하며 살 수 있지 않을까?


INFORMATION

1) 여행 준비하기 TIP 
- 타이완 타이페이 지도 무료 다운로드 : http://www.hanatour.com/asp/booking/freestyle/tourtips-guide-book.asp

2) 여행 떠나기 TIP
- 타이완 최저가 기획 상품 :  http://bit.ly/1gwFiyz
- 타이완으로가는 가장 저렴한 항공권 검색하기 : http://www.hanatour.com/asp/booking/airticket/gi-10000.asp

세상 가장 아름다운 노을, 단수이 스타벅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노을이 있는 카페
대만 단수이 스타벅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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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그리고 장소
오늘 이 글은 엄밀히 말하자면, 여행에서 마주한 '건축'이라기보다는 '장소'에 대한 이야기일 듯 싶다. 5년이라는 길다면 긴 시간 동안 학교에서 건축을 공부하면서 '건축'이라는 단어와 '장소'라는 단어는 이음동의어처럼 말하고 써 왔던 것 같다. 하나의 장소에 건축이라는 행위가 발생하면 그 장소는 그 건축물의 힘을 빌어 또 다른 장소로 탄생한다. 결국 장소 안에 건축이 있고, 그 안에 또 다른 장소가 있는 셈이다.
여행 이야기의 첫머리 치고는 좀 무겁게 시작하긴 했지만 이는 여행에서 마주했던 좋은 장소를 소개하기 위한 자기합리화 같은 것, 그리고 멋지고 매력적인 건축물이 오늘 이 글에는 등장하지 않는다는 예고같은 것이기도 하다. 허나 나는 이것도 또 다른 의미의 건축기행이라고 생각한다. 최고의 장소는 그 어떤 것보다 값진 건축재료인 법이니까. 

단수이, 맑은 물이 흐르는 곳
타이페이, 정확히는 단수이를 여행한 것은 2년 전의 늦은 여름이었다. 정말 더운 날이었다. 날짜로는 9월이었지만 여기는 남국, 타이완이었다. 소금 땀이 내내 흘렀지만, 그래도 하루 종일 시리도록 파란 하늘 빛을 보여주었으니 용서해 주련다.
맑은 물이 흐르는 곳, 그 이름도 아름다운 대만의 소도시 단수이에 도착했을 즈음, 뜨거웠던 하루 해는 이미 하루 일을 마치고 그 고도를 낮추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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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하늘 빛도, 그 아래 맑은 물도 붉은 빛을 강하게 뱉어내고 있었다.
붉게 물든 노을을 보기 위해 이 곳을 찾은 발걸음은 자연스레 급해질 수 밖에. 여유로운 여행을 원했으나 언제나처럼 총총거리는 걸음으로 단수이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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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런 풍경을 눈 앞에 두고 어찌 걷기만 할 수 있으랴. 반 정도는 초조함에 불안한 마음으로, 또 반 정도는 될대로 되라는 여유로운 마음으로 단수이를 뛰듯이 걸었다.
이 곳 단수이는 옛 역사가 담긴 건축물인 홍마오청이 있고, 가슴 따뜻하게 하는 주걸륜의 영화 '불능설적비밀'의 배경인 단장중쉐/담강중학이 있는 곳. 그러나 그 장소들, 건축물들을 다 직접 만나봤음에도 불구하고 기억 속에 가장 진하게 남은 풍경은 단수이 맑은 물을 붉게 물들이는 노을 그것이었다. 여행의 하루를 마감하며 진한 아메리카노와 함께 태양이 제 얼굴을 감출 때까지 오래도록 노을을 만끽할 수 있었던 그 장소와 그 순간이야말로, 여기 단수이에서의 가장 사랑스러운 기억이 된 것이다. 

단수이 스타벅스
- 주소 : No. 205, Zhōngzheng Rd, Danshui District, New Taipei City, Taiwan 251
- 가는 법 : MRT Danshui 역에서 도보로 약 10분, 단수이에는 두 곳의 스타벅스 지점이 있다. 오늘 소개하는 지점은 강변을 따라 10분 정도를 걸어야 마주할 수 있다.
- 홈페이지 : http://www.starbucks.com.tw
- 건축가 : 알 수 없음.
- 요약 :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소음 범벅의 스타벅스는 내 앞에 마주 앉은 사람의 목소리도 제대로 듣기 힘들다. 그러나 여기 타이페이 단수이의 스타벅스에서라면 그런 걱정일랑 잠시 접어두어도 좋다. 게다가 멋진 노을도 모두 공짜이니 마음껏 즐길 수 있다.

단수이 역으로부터 단장중쉐, 홍마오청을 돌아 여기 단수이 스타벅스에 도착했다. 하루 종일 뜨거운 태양과 씨름했던 터라 조금은 지쳐있는 몸, 하지만 진한 커피 한 잔이라면 그 여독쯤이야 금세 풀어낼 수 있는 것이 여행 아니던가. 아메리카노를 한 잔 받아들고는 노을을 만끽하기 위해 2층으로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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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에 앉아 땀을 식힌다. 가뜩 뜨거워졌던 몸을 추스르고 나니 그제야 하늘 빛, 물 빛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나의 시선도, 그 장소를 공유한 이름 모를 타인들의 시선도, 모두 창 밖을 향한다. 매직아워라고 하는 시간이었다. 해 지기 직전, 그리고 해 진 직후의 짧은 시간. 그 시간은 가장 아름다운 하늘 빛을 볼 수 있는 시간이자, 그 빛을 받은 모든 사물들이 가장 진한 색을 드러내는 시간.
그 시간이라면 혼자라도, 사랑하는 누군가와 함께라도, 좋을 것 같았다. 나도 그랬고 그들 역시 같은 생각이었길 바라다. 같은 곳을 바라보게 하는 힘을 가진 그 하늘 빛 시간 동안만이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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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라스에 나와 바깥 바람을 마주한다. 붉은 빛과 푸른 빛이 기싸움을 하는 무지개 빛 그라데이션.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그 싸움은 푸른 빛의 승리로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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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은 제 모습을 감추고, 손톱만큼 남은 붉은 빛이 하루의 끝을 장식한다.
강과 바다가 조우하는 바로 그 앞에서는, 매직아워의 하늘 빛, 물 빛을 담으려는 이들의 '작품활동'이 펼쳐진다. 이미 짙어진 하늘 빛. 때문에 사진은 잔뜩 어둡고 프레임 안에 담아낸 사랑하는 이의 얼굴은 알아볼 수 없을지라도, 그들은 즐겁고, 설레고, 행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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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과 밤의 경계에서 사진을 찍고 있노라니 다가오는 밤이 썩 반갑지만은 않았다. 게다가 나의 여행은 짧은 여행, 오늘이 지나면 이틀 밖에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 자꾸만 밤으로 물드는 하늘이 야속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 밤을 고마워할 수 있을 것도 같았다. 이미 짙어져 색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새까만 밤하늘이 되었지만, 오늘 하루 소금 땀을 흘리게 한 시리도록 파랐던 하늘도, 방금 전 짙은 붉은 빛을 보여준 노을도 분명 그 안에 있을 터이니.

타이페이와 단수이를 여행하는 당신, 커피 한 잔 하세요
커피는 좋아하지만, 스타벅스라고 환장하지는 않는다. 내가 이 곳을 찾은 이유도 그저 노을을 보며 커피 한 잔의 여유를 만끽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 그렇기에 나는 이 장소를 당신에게 추천한다. 커피를 좋아하는 여행자라면, 특히 스타벅스의 짙은 커피향을 좋아하는 여행자라면, 그리고 또 커피를 좋아하지 않더라도 이 노을 빛을 만끽하고자 하는 여행자라면, 당신 역시 이 곳을 사랑하게 될 것이 분명하니까. 

이런 여행자에게 추천
조금 특별한 스타벅스를 경험하고 싶은 스타벅스 매니아.
타이페이를 여행하는 나 홀로 여행자.
노을을 보며 설렁설렁 걷는 즐거움을 아는 여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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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밤이 되었다
여기 단수이도, 단수이의 스타벅스에도 밤이 찾아왔다. 또 다시 한참을 걷고 지하철을 달려 타이페이로 돌아가야 하는데, 단수이의 붉은 빛에 빠진 여행자의 발이 쉬 그 걸음을 떼지 못한다. 커피와 짙은 노을과 단수이의 매력에 흠뻑 젖었나 보다. 단수이를 찾은 당신. 당신도 조심하시라. 그 노을 빛의 매력에 너무 깊이 빠져들지 않도록.

주펀, 고양이와 홍등의 유혹!






황금산성 주펀의 메인스트리트는
지산제(基山街), 수치루(竪崎路) 정도의 굵은 골목을 따라 달린다.
실핏줄처럼 그곳에서부터 사방으로 뻗어달리는 자잘한 골목들이
주펀의 볼거리, 먹거리를 더욱 풍성하게 해주지만,
여하간 메인스트리트를 따라 우선 돌아보게 되는 게 인지상정.







붉은 홍등이 골목 양쪽으로 끊이지 않고 가지런히 늘어선 모습이 인상적이라는 이곳은,
원래는 산비탈을 따라 올라가는 금광촌이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금이 고갈되고 쇠락해 가다가,
'비정성시' 같은 영화로 재발견되면서 관광산업으로 발전하고 있다고.





붓이니 먹이니 '문방사우'를 팔던 가게.





이 문어같이 생긴 건 어디에 쓰는 물건인고, 하다가
흐뭇하게 웃고 있는 대가리를 잡고서는 이내 알아챘다.
대여섯개 꽂혀있는 다리로 폭폭폭 안마를 해주는 안마기.
들고서 몇번 토닥거려보니 제법 시원했다.









고양이를 팔던 기념품점.
고양이를 보고 눈이 휘둥그레져서 또 정신못차리고 한참을 넋 빼고 구경했다.
특히 저 낚시질하는 고양이,
흐뭇한 미소하며 가지런히 모은 두 손과 두 발(네 발이라 해야 하나?)이라니.






주펀에서 자주 만났던 간식거리 중 하나,
저렇게 두꺼운 깨엿 같은 걸 정말 대패로 밀어서 가루를 내서는,
밀가루를 얇게 펴 만든 전병 같은 것 위에 소복히 올리고는 그 위에 아이스크림을 두덩이,
그리고 이국적 향내 가득한 고수를 적당히 썰어 올려서는 말아서 주는 거다.


왠지 '방망이 깎는 노인'의 한대목이 떠오르는 할아버지의 대패질,
아 다 깍아졌고만 뭘 계속 대패질하고 있어요.
안 팔아, 이런 참을성없는 것 같으니라고.
아니 어디서 이런 간식을 사온 거에요,
깨엿. 대패질하기가 생각보다 쉽지가 않아서 조금 성글게 갈아도 잇새에 끼고
너무 곱게 갈아도 입술에서 녹아버리거든요.
터헛. 멋진 할아방.







아직 대낮이건만 구간구간 이렇게 터널처럼 위천장이 막힌 골목에서는 이미 홍등이 불이 들어왔다.
온갖 음식점과 찻집, 기념품점, 간식 파는 곳으로 가득한 골목, 돌아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문득 마주친 반가운 간식, 뽑기. 박카스병같은 투명한 갈색빛이 은은히 감도는 울트라맨이니 팬더니 따위의
설탕뽑기가 20NTS. 1NTS에 대략 35원이니까 35를 곱하면 700원쯤 하는 셈이다.






죄다 혀빼물고 있는 인형들이 천장에 주렁주렁 매달린 기념품점도 있었다. 혓바닥에 뭐라 써져 있던데,
뭐 자세히 안 봤지만 그런 거겠지 싶다. 복을 빌고 장수를 빌고 행운을 비는 그런 거.








다닥다닥 붙어있던 간판들, 홍등들, 그리고 어깨를 맞부딪히며 걷는 수많은 사람들.
그나마 가게 안에서 솔솔 흘려지는 에어컨 냉기 덕에 숨통이 트였고,
문득 잊었다는 듯 불어오는 바람이 골목통을 한번씩 훑어주는 덕에 그다지 답답하진 않았다.






또다른 간식, 커다란 버섯ㅡ아마도 새송이인 듯ㅡ을 통째로 양념장을 발라 석쇠 위에서 구워서는
먹기 좋은 사이즈로 잘라 종이컵에 담아주었다.
버섯도 꼬들꼬들 맛있었고 양념장도 짭조름하니 쳐묵쳐묵 했다는.






이렇게 중간중간 주펀 거리의 풍경을 넣어주면
왠지 함께 골목을 거닐며 이야기를 나누는 듯한 효과가 나지 않을까 싶어 부러 사진을 배치해 놓았는데.
효과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이럴 땐 차라리 동영상이 나을 수도 있겠단 생각,
내게 체류비와 적당한 월급과 캠코더를 쥐어준다면 평생 여행만 다니며 '걸어서 세계일주' 요런 거
내 나름의 버전으로 꾸며볼 텐데ㅋ






작고 귀여운 사이즈의 나무신발이 쪼로록 진열되어 있던 기념품점, 열쇠고리처럼 쓰라는 거 같은데,
그보다는 그냥 요렇게 진열하듯 전시해두는 게 훨씬 이쁘겠다.






이건 거의 떡이랑 흡사했다.
안에 소로 들어간 게 콩가루나 견과류, 요런 거라는 점도 그닥 색다를 건 없었고
다만 따끈따끈한 상태에서 들고 다니며 먹기에 딱 좋은 사이즈라서,
정말 주펀에서 돌아다닐 때는 쉼없이 입을 놀리며 걸었던 거 같다.






잘 보이진 않지만, 수치루(竪崎路)라는 이름 아래 '수기로'라고 한글로도 적혀 있다.
아마 드라마 '온에어'에서 이곳의 저녁무렵 홍등 풍경을 워낙 이쁘게 담아놓고 나서
늘어난 한국여행자들을 배려한 게 아닐까 싶다.








산등성을 따라 걷기도 하고, 비탈을 오르기도 하고,
전반적으로 주펀의 오르막을 따라 골목길을 쫓아가고 있었다.
그 와중에 이렇게 '깜찍한' 사진을 내걸고 장사하는 가게도 만나고.





새끼 고양이들을 풀어두고 간식을 팔고 있는 집도 있었고,




또다시 고양이 인형과 장식품과 그림들이 가득한 샵도 만나고.







아직 해가 지려면 몇 시간 기다려야 했다.
주펀 만큼이나 오래된 듯 낡고 헤진 꼬질꼬질한 홍등과
방금 갓 달아둔 신품의 홍등이 얼기설기 매달려 있었지만,
그 홍등들의 행렬이 만들어내는 묘한 흥취와 분위기가 색다른 곳.






찻집에서 차 한잔 마시며 카메라도 정리하며 시간을 보내다 문득 시간을 보니 꽤나 훌쩍 지나있었다.
맹물은 두 잔을 마시기도 힘든데,
차로 마시면 정말이지 쉼없이 물이 들어가는 거 같다.
더구나 이렇게 운치있는 다기와 주전자를 들썩이는 깨알같은 재미도 있다면야.






주펀의 본격적 매력 발산 타임.









치렁치렁 촉수를 내려뜨린 둥근 홍등에 일제히 불빛이 담겼고
음식점이니 기념품점의 알록달록한 색감과 어우러져 왠지 잔치같이 들뜬 분위기를 자아냈다.






군청색 단색으로 무신경하게 칠해버린 듯한 하늘이 평면처럼 주펀의 천장에 덮였고,
모노톤의 하늘이 불쑥 총천연색의 향연으로 반전되고 마는 주펀의 골목 풍경.







녹록치 않은 연륜을 과시하는 홍등 하나가
'어,  왜 저기에 걸려있지?' 할 정도로 뜬금없는 위치에 덜컥 걸려있었다.

아마도 이전 가게에서 저쯤에 달아놨던 사람들이 있었을 테고,
그 불빛을 보며 감상에 잠기고 흥이 북돋아지던 사람들이 오갔을 테고,
그렇게 생각하니 괜시리 토닥토닥해주고 싶다.






어둠이 살짝 깔리면서 사람들은 더욱 많아진 듯 싶다.
주말이 되면 여행객들 말고도 주펀 인근의 타이완 커플들이 잔뜩 몰려와서 불야성을 이룬다고 하니
조금이라도 한적한 걸 바란다면 주중에 날을 잡는 게 나을 듯.








사탕가게에서 팔던 뾰족한 뿔 모양의 사탕.
사탕이라고는 하지만 손끝으로 꼭꼭 눌러보면 쑥쑥 들어가는 부드러운 느낌인지라,
유가에 가깝다고나 할까.
식감이 독특할 거 같긴 했지만, 아무래도 저 요란한 색깔들은
식용색소 1호와 4호를 적당히 섞어 만들었겠다 싶어서 말았다.
무슨 꽃다발처럼 박스에 담겨있는 사탕송이들.






이건..일종의 콩떡이라 해야 하나.
손가락 마디마디 모양이 새겨지도록 꾹꾹 눌러빚어진 떡 안에는 이런저런 고명들이 들어가 있었다.
우리네 만두를 쪄내는 찜통같은 데서 뜨끈뜨끈하게 쪄내어지는 떡들.






그러고 보면, 주펀이란 곳은 살짝 야시장 삘도 나고, 남대문시장 같은 삘도 나고.
내가 돌아다녔던 곳이 이곳의 역사라거나 탄광촌으로서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 곳들이어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주펀의 골목들이 빼곡히 끌어안고 있던 것들은 역시 관광객 상대의 음식점, 분식점, 기념품점.
주렁주렁한 홍등만으로 충분히 분위기가 화사해지고 업되기는 하는데,
거기 뭐가 있드나, 하면 딱히...'분위기가 있어' 정도.






아, 그리고 이런 새로운 한글도 볼 수 있다고 말해주면 되겠다.
'미ㅡ럼 ㅜ의' 한자니 일본어는 훼손없이 잘만 붙어있는데
한글만 유독 이렇게 글자가 파기된 건 왜지?
쌍기억과 지읒이 사라졌다. ㄲ, ㅈ. 꺼져?







넘치는 간식거리, 돈만 있음 이것저것 자잘하게 사고 싶던 장식품들,
특히나 그 고양이들을 사지 못해서 너무 아쉬웠다는...
그래도 오르락 내리락 주펀의 경사로를 종횡하며 다니다보면 배 꺼지는 건 순간이었다.
땅바닥에서부터 홍등이 내걸린채 지정해주는 높이까지의 공간,
그 공간에 꽉 차 있던 볼거리, 먹거리들.







타이완에 와서 꼭 보고 싶던 것 중 하나가 경극,
중국어 공부를 한다 치면 니하오, 닌꿰이씽, 다음 쯤으로 꼭 나오는 문장,
"나는 경극을 봅니다." 따위의 것들.
경극이 대체 뭐길래, 아니, 뭔지야 알지만 실제로 어떻게 흘러가는 연극인지,
실제로 얼굴 바꾸는 걸 눈앞에서 볼 수 있는지 등등이 넘 궁금했는데,
역시 이번엔 기회가 닿지 않았다.

가면만으로 우선 만족.





좁다란 골목을 꽉 채운 채 천천히 진입하는 청소차,
뭔가 굉장히 부조화한 클래식음악을 배경음악 삼아 시끄럽게 깔아두고서
골목 양켠의 쓰레기모듬들을 수거하고 있었다.

이윽고 완전히 어두워지고 만 주펀의 중심가.
사람들이 슬슬 버스를 타고 떠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