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월 20일 월요일

로봇1 강철도시(1) - 아이작 아시모프

이 글은 현대정보문화사에서 1992년에 출판한 것을 옮긴 것입니다.
아이작 아시모프 지음
정철호 옮김

로봇1. 강철도시

형사 베일리와 경찰국장 엔더비

라이지 베일리는 자기 책상에 다가가서야 R. 새미가 무언가 할 말이 있는 듯 자기를 쳐다보고 있는 것을 알아챘다. 라이지의 기름하고도 엄격해 보이는 얼굴이 더욱 굳어졌다.
"무슨 일인가?"
"국장님이 부릅니다. 출근하는 대로 곧 와달라고 했습니다."
"알았네."
R.새미는 무표정한 얼굴로 그 자리에 계속 서 있었다.
"알았다고 했잖아. 이제 가봐!"
그제서야 새미는 오른쪽으로 빙 돌아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베일리는 슬그머니 신경질이 났다. 이런 일을 좀 어엿한 사람에게 시킬 수는 없는 걸까?
그는 잠시 멈춰선 채 답배갑에 손을 넣어 뒤적거리면서 속으로 어림잡아보았다. 매일 두 대씩만 피우면 배급날까지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는 칸막이를 지나 일반형사실을 가로질러갔다. 그가 승진해서 이 곳을 떠난 것은 2년 전의 일이다
그가 지나가자, 전자기록 파일 위로 몸을 구부리고 무언가 들여다보고 있던 심프슨이 고개를 쳐들었다.
"국장님이 찾으셨어요, 라이지."
"알고 있네. 방금 새미에게 들었어."
전자파일은 수은의 번쩍이는 표면에 찍힌 미세한 진동으로부터 정보를 찾아내려고 메모리를 꼼꼼히 분석하고 있었다. 일이 진행되는데 따라 그 작은 기계에서는 촘촘히 기호가 박힌 테이프가 풀려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심프슨이 말했다.
"다리 하나쯤 부러질 각오로 R. 새미의 엉덩이를 걷어차고 심정입니다. 얼마 전에 빈스 바렛을 만났거든요."
"오, 그랬나."
"빈스는 자기 일자리로 돌아오고 싶다더군요. 전에 하던 일이 아니더라도 무엇이든지 여기서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면 좋겠대요. 딱하게도 거의 자포자기한 상태더라구요. 하지만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어요. 새미는 이미 그가 하던일을 차지해버렸고, 이제 와서 돌이킬 수도 없으니...... 그는 효모농장에서 하역을 하고 있답니다. 그 일말고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나요. 모두들 좋아하던 똑똑한 사람이었는데......"
베일리는 어깨를 으쓱했다.
"우리 모두 그렇게 될지도 모르는 일 아닌가?"
마음과는 달리 그의 입에서는 조금 냉정한 대답이 튀어나왔다.
경찰국장의 방은 별실로 되어 있었다. 국장실 문의 반투명한 유리에는 '줄리어스 엔더비'라는 글씨가 아주 멋스런운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그 글씨는 유리섬유에 공을 들여 새겨 놓은 것 같았다. 그 이름 밑으로는 '뉴욕 시티 경찰국장' 이라는 글씨도 새겨져 있었다.
베일리는 국장실 안으로 들어섰다.
"국장님, 부르셨습니까?"
엔더비는 얼굴을 들었다. 그는 안경을 끼고 있었다. 그의 눈은 너무 민감해서 보통 콘택트렌즈를 쓸 수가 없다고 했다. 누구든지 그 안경에 익숙해지기 전까지는 안경이 없는 그의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 사상하기가 힘들었다. 그의 얼굴은 상당히 평범했다. 베일리는 예전부터 국장이 개성있게 보이려고 안경을 끼는 건 아닐까 하고 의심을 품어왔다. 안경 때문에 그의 인상을 아주 강렬해보였던 것이다.
국장은 왠지 좀 흥분되어 있는 것 같았다. 그는 등을 뒤로 한껏 기댄 채 소맷부리의 주름을 펴면서 이상할 정도로 친절하게 말을 건넸다.
"앉게, 라이지 앉아."
베일리는 어색하게 의자에 앉아 국장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엔더비가 다시 입을 열었다.
"제시는 어떤가? 벤은?"
"덕분에 잘 지냅니다. 국장님 댁도 별고 없으시겠지요?"
베일리는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엔더비는 앵무새처럼 그의 물음에 똑같이 대답했다.
"잘 있네. 다들 아주 잘 있어."
무언가 시작부터 이상했다. 베일리는 속으로 경찰국장의 얼굴이 어딘가 좀 달라 보인다고 생각했지만, 그런 생각을 접으면서 큰 소리로 말했다.
"국장님, 나한테는 R.새미를 보내지 마십시오."
"라이지, 내 생각이 어떤지는 자네도 잘 알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그는 여기에 배속되었고, 는 무슨 일이든지간에 그를 써먹을 수밖에 없네."
"기분 나쁩니다, 국장님. 그는 당신이 나를 부른다고 말해놓고도 그대로 거기 서 있었어요. 무슨 말인지 아시겠어요? 만약 내가 가라고 하지 않으면 언제까지나 거기에 서 있을 겁니다."
"그랬군. 그건 내 불찰이야, 라이지. 새미에게 자네를 부르라고 시키면서, 그 일을 마치거든 다시 가서 일하라고 명령해야 하는데, 깜빡 잊어버렸네."
베일리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자 눈가의 주름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났다.
"그건 그렇고, 이젠 그만 용건을 듣고 싶군요."
"그래, 라이지. 헌데 지금 자네에게 이야기하려는 일은 그리 쉬운일이 아니라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돌아서더니 책상 뒤의 벽 쪽으로 걸어가 쉽게 눈에 띄지 않는 스위치를 눌렀다. 그러자 갑자기 벽의 한 쪽이 투명해지면서 연한 잿빛 광선이 눈부시게 밀려들어왔다.
경찰국장이 미소를 지었다.
"작년에 특별히 마련한 시설이지. 아마 자네는 처음 보았을걸. 이리로 와서 한번 들여다보게. 옛날에는 방이란 방에 모두 이런 시설이 있었지. 사람들은 이걸 '창문'이라고 불렀다네. 알고 있나?"
베일리도 알고 있었다. 그가 즐겨 읽는 역사소설에는 창문에 관한 이야기가 많이 나왔던 것이다.
"들어는 보았습니다."
"이리 와보게."
베일리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국장이 시키는 대로했다. 바깥으로부터 차단되어 있는 방의 비밀이 노출된다고 생각하니 왠지 어색한 기분이 들었다. 국장의 회고적인 취향은 그런대로 봐줄 수 있는 것이었지만, 가끔 이렇게 극단으로 치닫는 데는 아연할 수밖에 없었다. 그의 안경도 이와 같은 경우였다.
'맞아! 국장의 얼굴이 어쩐지 낯설게 느껴지더라니 바로 그런 이유였군.'
"실례지만 국장님, 안경을 새로 하신 것 아닙니까?"
그 말을 듣자 국장은 좀 놀란 얼굴로 그를 쳐다보더니, 안경을 벗어들고는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나서 근 s다시 베일리를 향해 얼굴을 들었다. 안경을 벗은 국장의 얼굴은 더욱 둥글어 보였고 턱은 약간 더 삐죽해 보였다. 표정은 평소보다도 더 애매하게 느껴졌는데, 아마도 그의 두 눈이 초점을 잃고 있기 때문인 것 같았다.
"그랬지."
그는 안경을 다시 콧마루에 얹었다. 그리고는 갑자기 화가 나 못 견디겠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전에 쓰던 건 사흘 전에 망가뜨렸네. 이런저런 사정이 겹쳐서 안경을 맞출 겨를도 없었다네. 오늘 아침에야 겨울 안경을 쓸 수 있었지. 라이지, 지난 사흘은 정말 지옥 같았네."
"안경 때문인가요?"
"안경이 깨진 일 말고 또 다른 일이 있었어. 이제부터 그 이야기를 하겠네."
그가 창문 쪽으로 눈길을 돌리자 베일리도 따라서 그쪽을 바라보았다. 거기에는 조금 충격적인 장면이 펼쳐지고 있었다. 창 밖으로 비가 내리고 있었던 것이다. 한동안 그는 하늘에서 물이 쏟아지는 장엄한 광경을 넋이 나간 듯 쳐다보았다. 경찰국장은 그 자연현상이 마치 가기 자신이 노력한 결과라도 되는 듯 자랑스럽게 말했다.
"이번 달에만 비가 내리는 걸 세 번 보는군. 어때, 아주 장관이지?"
베일리는 자기의 의지와는 달리 장엄한 그 광경에 감동되는 자신을 느꼈다. 마흔두 해의 그의 생애에서 비 내리는 광경을 본 것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였다. 비뿐만이 아니라 자연계에서 일어나는 현상은 모두 마찬가지였다.
베일리가 말했다.
"저렇게 많은 물이 시티 위로 그냥 흘러가버린다고 생각하니 아깝군요. 저수지에 담아두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라이지, 자네는 현대파로군, 그게 바로 자네의 결점이야. 중세 사람들은 모두들 바깥에서 살았다네. 농장뿐만이 아니야. 도시도 바깥에 있었지. 이 뉴욕 시티까지도 포함해서 말야. 비가 내려서 빗물이 흘러가버려도 그 당시의 사람들은 낭비라고 생각하지 않았어. 대신 그 비를 자랑스럽게 생각했지. 그들은 자연의 순리에 따라 생활했네. 그렇게 하는 편이 인간의 삶을 훨씬 건강하게 해주었고, 또 다른 여러 가지 측면에서도 좋은 점이 많았지. 현대가 안고 있는 심각한 문제들은 자연과 단절된 데서부터 비롯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세. 자네도 이따금 <석탄시대> 같은 책을 읽어보는 게 어떻겠나?"
베일리는 이미 그 책을 읽었다. 또한 이곳저곳에서 들려오는 원자로 발명에 대한 불만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 베일리 자신만 해도, 일이 잘 돌아가지 않을 때나 격무에 지쳤을 때는 왜 원자로 따위가 만들어져서 이렇게 속을 썩이나 하는 심정이 되기도 했던 것이다. 불만이란 인간이라는 존재의 선천적인 습성인지도 모른다. 석탄시대만 해도 그랬던 것 같다. 그 당시 사람들도 증기기관의 발명에 대해 불평을 쏟아놓고 있으며, 세익스피어의 어떤 희곡에 나오는 극중 인물도 왜 화약이 발명되었느냐고 불평을 한 바 있다. 아마 천 년 뒤 우리의 후손들은 양전자두뇌가 발명되었다는 사실에 불만을 느끼고 있을지도 모른다. 참으로 고약스런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베일리는 가라앉은 목소리로 국장을 불렀다.
"줄리어스."
베일리는 근무시간중에는 비록 경찰국장 쪽에서 아무리 '라이지,라이지' 하면서 친밀하게 부르더라도 이쪽에서 그것을 그래도 받아 '줄리어스' 하고 이름을 부르는 건 삼가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부터 벌어질 일은 뭔가 조금 특별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느낌 때문에, 국장의 주의를 끌기 위해 짐짓 이렇게 부른 것이다.
"줄리어스, 왜 말을 이리저리 돌리면서 용건을 슬슬 피하는 거죠? 기분이 이상하군요.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겁니까?"
국장이 대답했다.
"그래, 이제 말하지. 라이지, 내 방식대로 말하겠네. 너무 골치아픈 사건이 생겼네."
"그렇겠지요. 이 행성에서 골치아픈 일을 빼고 나면 무엇이 남겠습니까? R. 문제입니까?"
"그렇다고도 할 수 있지. 라이지, 나는 이렇게 창문 앞에 서서 이세계에 앞으로 얼마나 더 귀찮은 일이 일어날 것인가 하고 생각해본다네. 나는 하늘 따위나 바라보려고 이 창문을 만든 게 아니야. 하늘은 아주 이따금씩만 볼 생각이었네. 그보다는 우리의 시티를 보려고 만든 거지. 시티를 바라보면서, 다음 세기에는 이곳이 어떻게 변할 것인가 생각해보려고 말야."
베일리는 국장의 감상주의적인 이야기에 반발을 느끼면서도, 어는 새 자기도 모르게 같이 창 밖을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었다. 하늘은 내리는 비 때문에 잔뜩 흐려 있었지만 뉴욕 시티의 모습은 여전히 장엄했다. 경찰청이 입주해 있는 시청은 하늘 높이 솟아 그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국장실 창문에서 보이는 가까운 마천루들은 그 꼭대기까지 드러날 정도로 낮아 보였다. 마치 당이 하늘을 향해 수없이 많은 손가락들을 뻗치고 있는 형상이었다. 거물의 벽은 창문 하나 없이 밋밋했다. 그것은 사람이라는 생물이 사는 상자의 겉겁데기였다.
경찰국장이 다시 입을 열었다.
"비가 와서 좋지 않은 점도 있군. 우주시(宇宙市)를 볼 수가 없잖아."
베일리는 서쪽을 바라보았다. 경찰국장의 말대로 우주시는 보이지 않았다. 지평선은 닫혀 있었다. 뉴욕 시티의 마천루들은 뒤쪽으로 갈수록 점점 안개 속에 잠겨 희뿌연 하늘을 끝으로 사라져버렸다.
베일리가 말했다.
"우주시가 어떻게 생겼는지는 알고 있습니다."
"나는 여기서 우주시의 모습을 보는 게 정말 좋아. 우주시는 두 브룬스윅 지구 사이에 딱 끼어 건설된 것 같애. 우주시에는 낮은 돔들이 널리 펴져 있다네. 바로 그 점이 우리와 우주인 간의 차이야. 우리의 시티는 하나로 뭉쳐져 위로만 높이높이 올라가고 있는데 비해서, 우주인들은 제각기 하나의 돔을 차지하고 살아가지. 한 가족이 하나의 돔에 사는 거야. 그리고 돔 사이에는 바깥의 땅이 있고...... 라이지, 자네 우주인과 이야기를 나눠본 적 있나?"
"두세 번 정도 있었지요. 한 달쯤 전에도 바로 이 방에서 국장님의 인터콤으로 통화를 했구요."
베일리는 초조해지는 마음을 억누르며 참을성 있게 대답했다.
"그랬지, 맞아. 하지만 내가 지금 말하는 것은 철학적인 문제라네. 그들과 우리의 생활양식에서 나타나는 차이에 대해......"
베일리는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경찰국장이 말을 돌리면서 본론으로 들어가기를 미룬다는 건, 필경 앞으로 그의 입에서 튀어나올 이야기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암시하는 것이리라.
"잘 알겠습니다. 헌데 그 철학적인 문제가 왜 이 시점에서 그렇게 걱정스럽다는 겁니까? 8백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이 좁은 지구 위에서 살도록 하자면 계속 뭉쳐서 올라가게 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닙니까? 우주인들이야 넓은 외계에서 살고 있으니 자기네들 좋은 방식으로 살든지 말든지 그냥 내버려두면 되는 거구요."
경찰국장은 자기 자리로 돌아가서 의자에 앉았다. 깜빡거리지도 않으면서 베일리를 똑바로 응시하는 그의 두 눈은 안경의 오목렌즈 때문에 조금 작아진 것처럼 보였다. 그가 입을 열었다.
"모두 다 자네처럼 두 문명의 차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는 않네. 우리 쪽도 그렇고 우주인들 쪽에서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지."
"그건 저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게 대체 어떻다는 겁니까?"
"바로 사흘 전에 우주인이 한 사람 죽었네."
이제야 이야기가 본론으로 넘어가는 모양이었다. 베일리의 얇은 입술이 비웃는 듯 삐죽 튀어나왔다. 하지만 그의 우울해 보이는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거 참 안됐군요. 전염병이었나요? 아니면 무슨 바이러스나 감기 때문에?"
경찰국장은 놀란 표정을 감추지 않은 채 힐난하듯 말했다.
"자넨 도대체 무슨 말을 그렇게 하나?"
베일리는 그 질문에 굳이 대답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 우주인들이 자기네 사회에서 질병이란 질병을 모두 일소해버렸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었다. 그래서 그들이 병원체가 우글거리는 지구인과 접촉하는 걸 신경질적일 정도로 꺼린다는 것 역시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사실 경찰국장에게 빈정대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베일리는 창문 쪽으로 돌아서면서 말했다.
"뭐 별다른 뜻으로 그렇게 말한 건 아닙니다. 그 우주인이 왜 죽었느냐고 물었던 것뿐이지요."
"가슴이 완전히 날아가버렸네. 누군가가 광선총을 쏘았어."
베일리는 순간 몸이 얼어붙는 듯했다. 그는 창문 쪽을 향해 선 채로 다시 물었다.
"뭐라구요?"
"살해당했다는 거야."
국장은 조금 차분해진 목소리로 이야기를 계속했다.
"자네는 사복형사야. 살인이 무얼 의미하는지는 잘 알고 있겠지?"
베일리가 몸을 돌이켰다.
"아니, 설마 우주인이! 사흘 전이라구요?"
"그래"
"누가 그런 짓을 저질렀습니까?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을까요?"
"우주인들은 지구인이 그 사건을 저질렀다고 주장하고 있다네."
"그럴 리가 있습니까?"
"어떻게 아니라고 단언할 수 있나? 자네만 하더라도 우주인을 싫어하잖아. 그 점에 대해서는 나도 마찬가지고 ...... 지구인 치고 우주인을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나. 우리 두 사람보다 그들을 더 싫어하는 지구인이 있었나 보지."
"그랬을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로스앤젤레스 공업지대에서 방화사건이 있었네. 베를린에서는 R. 파괴소동이 있었고...... 상하이에서도 몇 번이나 폭동이 일어났지."
"그랬지요."
"이런 사건들은 하나같이 우주인에 대한 불만이 심각할 정도로 고조되고 있다는 걸 나타내주고 있네. 혹시 어떤 배후세력이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야."
"국장님, 도무지 이해가 안 가는군요. 혹시 저를 떠보고 계신 건 아닙니까?"
"뭐라고?"
이번에는 오히려 경찰국장이 무슨 소리냐는 표정을 지었다. 베일리는 국장의 얼굴을 천천히 뜯어보면서 이야기를 계속했다.
"사흘 전에 한 명의 우주인이 피살되었다, 그런데 우주인들은 범인이 지구인일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지금까지......"
그는 잠시 이야기를 중단하고 손가락으로 책상을 툭툭 쳤다.
"밝혀진 게 아무것도 없다는 말입니까? 국장님, 믿을 수 없는 일입니다. 이건 농담이 아닙니다. 만일 그런 사건이 실제로 발생했다면 뉴욕 시티 하나쯤은 벌써 지구상에서 날아가버리지 않았을까요?"
경찰국장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렇게 문제가 단순한 것만은 아니라네, 라이지. 지난 사흘 동안 난 정말 정신없이 뛰어다녔어. 시장도 만났고 우주시에도 가보았지. 워싱턴에 가서 지구연방 검찰청에 호소해보기도 했네."
그랬군요. 그런데 연방 검찰청에서는 뭐라고 합디까?"
"연방 검찰청에서는 이번 사건이 우리 뉴욕 시티 경찰청 관할이라고 하더군. 시티 지역 안에서 일어난 사건이니까 말야. 우주시는 뉴욕 시티 관할이잖아."
"하지만 우주인들은 지구외법권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지. 그 이야기도 해야 했는데......"
경찰국장은 베일리의 차가운 시선에 맞부딪히자 눈길을 피했다. 그러고 보니 왠지 국장은 자신이 마치 베일리의 n하로 강등되기라도 한 것 같은 태도를 취하고 있었다. 자연히 베일리조차도 국장을 자기부하 대하듯 하게 되었다.
"이번 사건의 수사는 당연히 우주인이 주도하겠군요."
그러자 경찰국장이 호소하듯 말했다.
"아니야, 라이지. 너무 성급하게 굴지 말게. 나는 자네를 친구처럼 생각하니까 솔직히 이야기하겠네. 자네가 내 처지를 좀 이해해주게나. 이 사건이 일어났을 때 나는 사건 현장에 있었네. 로이 네메누 서튼과 만나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거든."
"그가 피살된 겁니까?"
경찰국장은 고통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그가 살해되었어. 단 5분만 일찍 거기에 갔었으면 바로 나 자신이 시체를 처음으로 발견한 사람이 되었을 걸세. 그랬다면 얼마나 충격을 받았겠나? 현장은 정말 처참했다네. 우주인이 전해주더군. 그 사건은 사흘 동안 나를 괴롭힌 악몽의 출발점이었지. 게다가 난 안경까지 망가뜨렸기 때문에 더욱 괴로웠어. 안경을 바꿀 시간이 나질 않아서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데다가...... 이런 일은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겠지만, 혹시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번에는 아예 안경 세 개를 여벌로 주문해두었다네."
베일리는 그 장면을 머리 속에 그려보았다 키가 크고 늘씬한 우주인이 국장에게 다가가 아무런 감정도 수식어도 없는 독특한 말투로 사건에 대해 따지는 모습이 눈에 선했다. 줄리어스는 안경을 벗어들고 알을 닦기 시작했을 것이다. 사건의 무게에 억눌려 긴장한 나머지 그는 안경을 떨어뜨렸던 게 분명하다. 그는 커다랗고 윤곽이 부드러운 입술을 떨면서 깨져버린 안경의 잔해를 안타깝게 내려다보았겠지. 국장이 적어도 5분 동안은 살인사건 자체보다도 깨뜨려버린 안경에 더 마음을 썼을 것이라고 베일리는 생각했다.
그때 경찰국장이 덧붙였다.
"내가 그들에게 뭐라고 할 만한 처지가 못되는 건 자네도 알겠지. 자네 말대로 우주인은 지구외법권을 가지고 있네. 그러니 그들은 독자적으로 수사를 벌이겠다고 주장할 수도 있고, 외계의 본국 정부에 자기들 멋대로 보고할 수도 있어. 우주국가연합은 마음만 먹으면 이번 사건을 구실삼아 아주 막대한 손해배상을 요구할 수도 있네. 그렇게 되면 우리 지구인들이 얼마나 큰 부담을 져야 하는지 자네도 알고 있겠지?"
"그걸 배상하려 든다면 백악관은 정치적으로 자살하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렇다고 배상에 응하지 않겠다고 하면 또 다른 의미에서 자살을 하는 셈일세."
"그런 일까지 설명하실 필요는 없어요."
베일리는 어린 시절에 일어났던 한 사건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우주공간에 눈부시게 번쩍거리는 우주선이 나타났다. 그들은 자기들 것이라고 주장하는 어떤 것을 손에 넣기 위해 워싱턴과 뉴욕, 그리고 모스크바에 그들의 군대를 보냈던 것이다.
"그래, 자네도 알겠지. 배상을 하던지 하지 않든지 간에 심각한 문제는 그대로 남네. 그 문제를 피할 오직 하나의 방법은 바로 범인을 우리의 손으로 체포해서 우주인 측에 인도해주는 거야. 앞으로 일어날 모든 사태가 이 일의 성패에 달려 있다네."
"왜 지구연방 검찰청에 이 사건을 맡기지 않는 겁니까? 법적으로만 따진다면 우리 시티의 관할인 게 분명하지만, 이 문제는 행성간의 외교문제가 얽혀 있는......"
"연방 검찰청은 절대로 이 사건에 손 대려고 하지 않을 거야. 살인 사건이 여기에서 일어난 만큼 우리에게 책임이 돌아올 게 분명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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