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1월 20일 목요일

히로히토 쓰레기

1.jpg

2.jpg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에서 

천황은 절대적인 존재였다.

일본이 연합국에 항복할 때 단 하나의 조건을 내걸었는데

그 하나가 바로 '국체 유지' 다

'국체 유지'가 무엇이냐하면

쉽게 말해 천황 목숨 보전과 천황제의 유지다.

항복 조건으로 그것 하나만을 말할 정도로

당시 일본에서 천황과 천황제는 절대적이었다. 



3.jpg

4.jpg

5.jpg

히로히토 또한 자기 자신이 천황제 유지를 

최우선시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천황제 유지를 연합국이 보장해주기 전까지는

절대로 항복을 수락하지 않았다

(자신의 자리 유지를 위해 항복을 미루는 동안

애꿎은 사람들만 죽어나갔다)



6.jpg

7.jpg

태평양전쟁 막바지인 1940년대 중반 즈음에는

일본 국민들이 계속되는 전쟁으로 생활이 피폐해지고

주변 사람들이 죽어나가자 

점차 여론이 안좋아지기 시작했다.

만약 이 상태에서 연합국에 패배 선언을 해버리면

지금까지 승리할 것이라는 정부와 대본영의 말만 믿고 

힘든 시간을 견뎠던

일본 국민들이 분노해 어떤 행동을 취할지 

아무도 장담할수가 없는 상태였다

일본의 최고 책임자인 히로히토에게도 책임론이 불거질 것이므로

천황은 그 책임에서 벗어날만한 정치적인 시나리오가 필요했다.



8.jpg

12.jpg

13.jpg

그 시나리오는 히로히토의 성단 (성스러운 결단) 이었다

히로히토가 국민을 위해 전쟁을 포기했다 

즉 히로히토의 성단으로 인해 일본 국민이 구원받았다는식의 

성단 신화를 만들어냈다.




14.jpg

15.jpg

16.jpg

일본 국민에게 히로히토가 직접 말로 전했던 

종전 조서에는 이런 글귀가 있다

"타국의 주권을 배격하고 영토를 침략하는 행위는

본래 짐의 뜻이 아니다"

히로히토 자신은 전쟁을 바라지 않았다

라고 직접적으로 말하고 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17.jpg

18.jpg

 궁내성 내대신으로서 히로히토의 측근이었던

기도 고이치가 쓴 일기에 따르면

개전을 결정하기 전날 (진주만 폭격 전날) 

히로히토가 해군대신을 불러

예정대로 추진하도록 하명했다는 기록이 있다



19.jpg

20.jpg

21.jpg

당시 일본 정치시스템은 

정부와 군부가 나뉘어진 상태였다

정부가 군부는 서로의 일에 함부로 끼어들 수 없었고

 정부와 군부의 상위에 있었던 것이 바로 천황 히로히토였다

1945년 8월 초까지 전쟁을 계속 하겠다는 고집을 꺾지 않았던 군부도 

히로히토가 연합국에 항복 의사를 밝히자 그 의사에 따랐다 

그 정도로 당시 히로히토는 일본에서 절대적 존재였다 

만약 히로히토가 전쟁을 피하고 싶다라고 의사표현을 했으면

분명히 전쟁을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22.jpg

23.jpg

1944년 사이판이 함락되고

전세가 미국쪽으로 급격히 기울자

일본 군부 내에서도 

이 전쟁에 대해 승산이 없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24.jpg

이 때 히로히토가 한 말은

"지금은 전쟁의 상황이 위급하므로 억조 일심하여 

전력을 쏟아 적을 격퇴해야 할 시기다"

즉 전쟁은 히로히토 자신의 뜻이 아니라는

종전 조서에서의 말은 거짓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25.jpg

26.jpg

당시 히로히토의 측근들이 한 말을 보면

히로히토가 전쟁을 원하지 않았다는 것은

거짓임이 확실히 드러난다



27.jpg

28.jpg

29.jpg

종전조서는 히로히토의 변명서와 다름이 없다

즉 자신에게는 이 전쟁의 책임이 없다라고

일본 국민과 연합국에게 변명한 것이다




31.jpg

32.jpg

33.jpg

히로히토의 종전조서 낭독이 있은 후 

수상의 연설과 아나운서의 해설이 있었고 

그 내용은 천황의 성스러운 결단으로 인해

일본 국민을 구했다는 내용이었다

이로 인해 일본 국민들 사이에서는 

천황 덕분에 전쟁이 끝나고 우리가 목숨을 구했다

라고 하는 인식이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34.jpg

35.jpg

36.jpg

전쟁을 일으킨 장본인 히로히토에 대해

히로히토는 일본 국민을 전쟁으로부터 구해준 영웅이다

이렇게 완전히 사실과 반대되는

인식을 일본 국민들에게 심어준 것이다



37.jpg

38.jpg

39.jpg

40.jpg

42.jpg

43.jpg

일본 국민들은 그 방송을 듣고 

히로히토에게 죄송한 심정을 가졌다고 한다



44.jpg


45.jpg

47.jpg

48.jpg

49.jpg

히로히토는 자신의 이미지를 평화적으로 

변화시키기 위해 지방순행(정치적 쇼)을 시작한다



50.jpg

51.jpg

52.jpg

53.jpg

결국 히로히토는 일본을 구한 평화적 영웅의

이미지를 구축하게 되고 

일본인들은 그를 영웅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