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월 3일 수요일

데츠카 오사무

만화를 사랑하는 팬들 대부분-일부 제외-에게서 아톰의 아버지니, 재패니메이션의 창시자... 등으로 불리기 보다는 "만화의 신"이라 불리는 데츠카 오사무. 하지만, 그가 태어난 1928년 11월 3일은 그다지 대단할 것도 없는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한마디로 평범한 날이었던 것 같다.(같다라는 것은 그에 대해 아무런 기록도 없기 때문...) 흔한 성자들의 탄생 때처럼 별이 반짝인다거나, 혜성이 하늘을 빛내는 일도 없고 무엇보다도 태몽 같은 것도 기록에 없으니, 한 마디로 지극히 보통 사람의 탄생이었다고 할까?

  하지만, 한 발짝, 아니 자리에 앉아서도 수많은 만화를 접하게 되는 지금과는 달리 만화 자체가 거의 존재치 않았던 당시, 어린 시절부터 종이에다 만화(그것도 제대로 된 스토리를 가진 작품)들을 그리는걸 취미로 삼았던 소년이 평범한 사람이라고는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것도, 의학 전문부에 입학한 지 1년 만에 신문에서 만화가로 데뷔했다면 말이다. 1946년 4컷 만화 <마아짱의 일기장(マアチャンの日記帳)>. 그의 인기에 힘입어 지금도 다시 발매되고 있는 바로 이 작품으로 데츠카 오사무의 활약은 시작되었다.

  그리고 다음 해, 후일 데자키 오사무에 의해 애니메이션으로 국내에도 소개되었던(그리고, 악역의 묘미를 보여주었던) <신 보물섬(新宝島)>. 전쟁 직후의 황폐한 생활 속에서도 자그마치 40만부의 판매량을 기록한 그 작품을 통해 데츠카 오사무의 전설은 막을 올렸다.

  그리고, 1952년. 2004년에 일본 열도를 들끓게 만들었던 전설적인 걸작 <철완 아톰(鉄腕アトム)>, 그리고 -역시 국내에서 TV로 인기를 모았던- 데츠카판 <서유기>의 원작, <나의 손오공(僕の孫悟空)> 등을 연재하면서 유명작가로 부상한 데츠카 오사무. 그리고 다음 해에는 <사파이어 왕자>란 이름으로 국내에서도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남장 왕녀의 활약을 그린 걸작 <리본의 기사(リボンの騎士)>로서 소녀만화(국내에선 순정만화)의 가능성을 선보였다.

urasawa_pluto.jpg   그 후에도 다채로운 만화로 이름을 떨친 그가 재패니메이션의 역사를 시작하게 된 것은, 1958년 토에이의 동화 <서유기(西遊記)> 구성을 담당하면서. 여기서 만화 이상의 가능성을 깨닫게 된 그는 1961년. 그 스스로의 투자로 데츠카 오사무 프로덕션 동화부를 창설하고 그로부터 2년 후. 일본 최초의 TV 애니메이션, <철완 아톰>을 등장시킨 것이다.
(그다지 크지 않은 체격에도 불구하고 거대한 로봇들을 마음대로 던져 버리는 아톰의 모습은 특히 인기를 끌었기에 우라사와 나오키(*)씨에 의해 <플루토>라는 이름으로 리메이크되고 있는 “지상 최강의 로봇”편에서 당당하게 보여주기도. 여기서 아톰은 창조주이자 아버지인 텐마 박사(국내명 고명한 박사)에 의해 100만 마력의 힘으로 개조되어, 지상 최강을 목표 싸우는 로봇, 플루토와 대결한다.)
-> 우라사와 씨에 의해 탄생한 <플루토> 아톰의 새로운 모습을 볼 수 있다.

  당시 일본 만이 아니라 미국에서도 오직 극장용의 애니메이션 밖에 없던 시절, 1~2시간짜리 애니메이션을 최소한 반년, 길게는 2년 이상에 걸쳐 완성하던 그 시기에 매주 30분 정도의 애니메이션을 제작한다는 작업은 당시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지만, 후일 "만화의 신"이라 불리게 될 그 사나이는 해냈다. 그것도 그 스스로 원화에서부터 때로는 동화까지 맡으면서...

  때로는 병으로 반쯤 죽어나는 상황에서 이불을 두르고 작업을 하면서도 "도저히 일정을 맞출 수 없습니다. 그만 쉬세요. 내친김에 저희도 좀 쉬죠.icon_biggrin.gif"라는 스텝에게 무릎 꿇고 사정하면서 "제발 하게 해 주세요...(해 주세요가 아님.)"라는 비화까지 존재하는 데츠카 오사무.

  캐릭터 상품이나 DVD 등으로 제작비를 벌어들이는 현재의 애니메이션 시장과는 달리 몇 개 안 되는 광고 외의 수입원이 전혀 없던 당시의 TV 애니메이션 시장에서, 만화로 벌어들인 막대한 돈을 쏟아 부으며 그야말로 '하고 싶어서 참을 수 없는' 상황을 그 스스로의 힘으로 극복하면서 그는 일본의 만화, 그리고 애니메이션이라는 세계를 탄생시킨 것이다.

  물론, 부업icon_biggrin.gif으로 돈을 벌면서 그야말로 무료 봉사로 애니메이터 역할까지 했던 그로 인하여 일본 애니메이터들의 급료가 지극히 저렴하게 결정되었다며, 후일 미야자키 하야오(*) 등의 비난을 듣기도 했지만.(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데츠카 오사무야 부업으로 돈을 번다지만, 애니메이터들은 그럴 수도 없잖아!') 60~70년대 초에 걸친 그의 전성기. 데츠카 오사무의 활약은 그야말로 신의 그것에 필적할 정도. 수입이나 작품의 양은 진정으로 상상을 초월했지만, 작업 속도 역시 "가속 장치를 부착했다"는 평까지 들었던 전성기의 이시노모리 쇼타로(*)를 능가할 정도. 그리하여 그는 <철완 아톰>이후, 그가 동화의 공부에 큰 도움을 받았던 디즈니 애니메이션 <밤비>에서 모티브를 얻은-그리고 후일 <라이언킹>에 영향을 준- <정글의 왕자 레오(ジャングル大帝,정글대제)> 등 수많은 작품을 성공시켰다.

  하지만, 1970년대 초에 이르러 데츠카의 신에 필적하는 활동에도 어려움이 생겼다. 데뷔작 이래 그때까지 쉬지 않고 대작을 쏟아냈던 그였지만, 왠지 필력이 떨어졌다는 평가를 듣게 된 것.
  그의 활약에 감동까지 하며 그의 노력에 박수를 그치지 않았던 만화계였지만, 이제는 진정으로 휴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일까? 그리하여 이제까지와는 달리 마지막으로 그가 만들고 싶은 작품을 마지막으로 맡기고자 했다.

  그리하여 탄생한 것이 그의 최고 걸작 중 하나인 <블랙잭(ブラックジャック)>. 다른 작품과는 달리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지는 않았지만(근래에 들어서 극장판 등으로 쏟아져 나왔고 당초엔 실사 드라마나 영화로 제작되었다.) 그의 많은 작품들이 그렇듯 센세이션을 일으키고 전설 속의 캐릭터로 남게 된, 블랙잭이라는 무허가 의사의 활약을 그리고 있는 이 옴니버스 작품은 이제까지 그가 탄생시킨 수많은 캐릭터들이 엑스트라로 등장한다는 것도 특징.(가령 타임머신으로 과거로 간 블랙잭이 남장한 왕녀icon_biggrin.gif를 치료한다거나...)

  그의 전공을 살렸다고 할 수 있는 이 작품으로 그는 일본 만화가 협회 특별 우수상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부활하고 그 후 불교의 시조, 부처의 생애를 그린 <붓다(ブッダ)>, 독특한 판타지 세계관을 바탕으로 감상적인 사랑과 숙명을 그려낸 <불새(火の鳥)> 등의 걸작을 선보이며 1989년 위암으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활약을 계속했다.

  아톰 이래 수많은 역작들을 탄생시킨 데츠카 오사무. 그야말로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넘쳐나는 그의 세계에서, 그는 단순히 자기 개인으로서 종결되지 않고 새로운 가능성을 탄생시키려는 듯 수많은 강좌와 강의 서적들을 제작했다. 그야말로 셀 수 없이 많은 책이나 기회를 통하여 그는 캐릭터 작법을 시작으로 만화의 실전에 이르는 많은 가르침을 내렸고, 이를 통하여 수많은 만화가들이 탄생했다던가?

  하지만, 이렇듯 직접적인 방법에 국한하지 않고도 데츠카 오사무는 수많은 작품들을 통해서 이제껏 그 누구도 도전하지 않았던 가능성에 도전하여 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이를테면, <리본의 기사>를 통하여 이제껏 남성들의 전유물이 되었던 만화들을 여성들도 접할 수 있는(한편으로는 여성들이 더 좋아할만한) 가능성을 탄생시켰고, 후일 소녀 만화(순정 만화)라 불리는 장르로 계승되도록 하는데 기여하였다. 그 밖에도 종교 만화 등 수많은 장르를 탄생시킨 그는, 필력이 떨어져 이제 쉴 때가 되었다는 평가를 받는 상황에서도 <블랙잭>으로 -사실성은 조금 떨어질지 모르지만- 의학 만화라는 것을 제시하기도.

  <철완 아톰>으로 SF 만화 붐을 이끌어내고, TV 애니메이션을 시작했을 뿐만 아니라, <정글 대제>를 통해 동물을 주제로 한 애니메이션의 인기를 이끌어내고 그 밖에도 수많은 걸작들로 인기를 끌었던 제작자.

  4컷 만화를 시작으로 SF에서 판타지, 요괴물에 종교, 동물이 등장하는 모험물, 의학물, 심지어 성교육 만화까지 그야말로 죽기 직전까지 새로운 가능성을 계속 이끌어냈다는 것 만으로 보아도 1989년 죽은 그가 “만화 신”으로 부활했다는 팬들의 믿음이 결코 망상 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갖게 하지 않을까?



- 작품 목록 -

  단편까지 생각하면 일 년에 수 십 개씩 쏟아내기도 했던(그야말로 신의 그것이라 할 만한 속도를 자랑한다.) 그의 작품들을 전부 기재하고 소개한다면, 아마 이 잡지를 절반 이상은 채워야 할지도 모르니, 여기서는 정말로 그의 가장 대표적인 작품 몇 개 만을 소개해 본다.

(* 애니메이션이나 만화 중 [국내]라고 된 것은 필자가 직접 보았거나, 방송된 것을 알고 있는 경우. 때문에 부분적으로 부정확할 수도 있다.)
1. 만화
1) 마야의 일기장(マアチャンの日記帳) - 1946년. 소국민 신문 연재. 4컷 만화.
2) 신 보물섬(新寳島) - 1947년. 단행본 발매. 소설 원작 만화판. 국내.
3) 로스트 월드(ロスト・ワールド<前世紀>) - 1948. 단행본 2권. SF
4) 메트로 폴리스(メトロポリス(大都会)) - 1949. 단행본. 영화 원작의 만화판.
5) 신비한 여행기(ふしぎ旅行記) - 1950. 단행본. 모험물.
6) 정글 대제(ジャングル大帝) - 1950. 단행본. 동물. 국내.
7) 아톰 대사(アトム大使) - 1951. 연재. 철완 아톰의 프로토 타입. SF
8) 철완 아톰(鉄腕アトム) - 1952. 연재. SF. 국내.
9) 리본의 기사(リボンの騎士) - 1953. 연재. 판타지? 국내.
10) 불새(火の鳥) - 1956. 연재. 판타지.
11) 마그마대사(マグマ大使) - 1965. 연재. SF.
12) 도로로(どろろ) - 1967. 연재. 요괴물.
13) 바다의 트리톤(青いトリトン) - 1969. 연재. SF. 국내.
14) 붓다(ブッダ) - 1972. 연재. 종교 만화.
15) 블랙잭(ブラックジャック) - 1973. 연재. 의학물. 국내.
16) 세눈이 온다(三つ目がとおる) - 1974. 연재. 요괴. 초능력.
17) 비내림 소년(雨ふり小僧) - 1975. 연재. 요괴
18) 유니코(ユニコ) - 1976. 연재. 판타지.
19) 돈 드라큘라(ドン・ドラキュラ) - 1979. 연재. 요괴.
20) 무지개 잉꼬(七色いんこ) - 1981. 연재. 도둑물.
21) 네오 파우스트(ネオ・ファウスト) - 1988. 연재. 단테의 신곡을 모티브로 한 작품? 3번째 만화화.

2. 애니메이션(TV)
1) 은하소년대(銀河少年隊 ) - 1963. 데츠카 오사무 캐릭터의 인형극. 원안. 캐릭터.
2) 철완 아톰(鉄腕アトム) - 1963. 총 193화(24분). 흑백. 국내.
3) 정글 대제(ジャングル大帝 ) - 1965. 총 52화. 국내(정글의 왕자 레오)
4) 리본의 기사(リボンの騎士) - 1967. 총 52화. 국내(사파이어 왕자)
5) 오공의 대모험(悟空の大冒険) - 1967. 총 39화. 국내(서유기)
6) 도로로와 백귀마루(どろろと百鬼丸) - 1969. 총 26화. 흑백
7) 바다의 트리톤(海のトリトン) - 1972. 국내. 총 27화.
8) 신 철완아톰(鉄腕アトム(新)) - 1980. 국내. 총 52화.
9) 신 정글대제(ジャングル大帝(新)) - 1989. 국내. 총 52화
10) 세 눈이 온다(三つ目がとおる) - 1990. 48화
11) 성서이야기(聖書物語) - 1997. 총 26화.
12) 아스트로 보이 철완 아톰(アストロボーイ・鉄腕アトム) - 2003년. 총 50화. 국내
13) 블랙잭(ブラック・ジャック) - 2005년.

3. 애니메이션(극장판)
1) 불새 여명편(火の鳥・黎明編) - 1970.
2) 불새 2772 사랑의 코스모존(火の鳥2772 愛のコスモゾーン) - 1980.
3) 유니코(ユニコ) - 1981. 국내(TV방송. 유니콘)
4) 불새 봉황편(火の鳥・鳳凰編) - 1986.
5) 블랙잭(ブラック・ジャック)

4. 애니메이션(OVA)
1) 러브 포지션 할레 전설(ラブ・ポジション ハレー伝説) - 1985.
2) 불새 우주편(火の鳥・宇宙編) - 1987. 국내(TV방송)
3) 블랙잭(ブラック・ジャック) - 1993.



* 우라사와 나오키 - 현재 일본 최고의 만화가 중 하나로서, 청소년에서부터 성인에 이르기까지 넓은 팬을 확보하고 있다. 사실적인 연출과 스릴. 그리고 작화에서 느껴지는 깊이에서는 그를 따르는 이가 없을 정도. 후일 ‘야와라의 재현’이라며 인기를 끌었던 일본 유도의 영웅, 타무라 요코를 통해 회자되었던 <야와라!>를 필두로 <파인애플 아미>, <마스터 키튼>, <몬스터> 등의 작품을 선보이고 있으며, 최근에는 <20>에 이어, <플루토(Pluto)>를 통해 그 나름으로 재탄생된 아톰의 이야기를 보여주고 있다.

* 미야자키 하야오 - 혹시나 모르는 이들을 위해 잠시 소개하자면, 그야말로 현재 재패니메이션 성장의 주역 중 하나. <알프스의 소녀 하이디>를 필두로 <미래 소년 코난> 등의 작품을 히트시키고, 현재의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작품으로 재패니메이션의 품격을 높였다. 반 데츠카 일파의 선봉장.

* 이시노모리 쇼타로 - <가면 라이더>, <사이보그 009> 등 주로 개조 인간들을 소재로 한 작품으로서 열혈 만화가 시마모토 카츠히코(본명 데츠카 히데히코지만, 데츠카 선생을 신경써서 필명을 쓰게 되었다. 데츠카 오사무씨의 아들과 거의 같은 날 태어나기도.^^)를 비롯한 수많은 팬을 거느리고 있는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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