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3월 7일 월요일

신석기 시대의 유적지 특징

B.C. 6천년전부터 시작된 신석기 시대는 토기를 제작하고 살았다는 점에서 구석기 시대와는 다른 특징을 보인다. 신석기 후기가 되어 황해도 봉산군 지탑리 유적에서 돌가래 돌보습[石犁] 돌낫 등의 농기구와 탄화된 곡물(수수)이 발견되어 농경 사실이 입증되었다. 농경이 시작되면서 해안과 강변에 거주했던 빗살무늬토기인들은 점차 내륙지방으로 진출했는데, 이들은 원형 또는 방형의 움집을 짓고 살았다. 웅기의 패총 움집에서는 오늘날의 화덕과 같은 난방장치도 발견되었다. 신석기인들은 씨족을 근간으로 한 부족사회를 형성하였고 족외혼의 유습이 있었다. 이미 애니미즘(태양숭배), 샤머니즘, 토테미즘 등의 신앙생활(내세신앙 포함)을 하고 있었으며 후기에는 암각화(울주, 고령, 칠포)를 그리면서 미적감각도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들은 현재 한민족의 기원(아시아족)으로서 우리 민족의 주류가 된 청동기인(예맥족)의 바탕이 되었다. 신석기 유물들은 주로 패총(조개무지)에서 많이 발견되고 있다.

시기
토기
특징
유적지
전기
(B.C.6000 - 4000)
원시무문토기
(이른 민무늬토기 )
융기문토기
(덧무늬 토기)
선즐문토기
굵은 태토로 만든 작고 소박한 토기로 무늬없는 원시무문토기와 덧무늬를 붙인 융기문토기로 구분됨. 동해안을 따라 제한된 일부지역에 존재
양양 산리
포진,
부산 삼동
웅기 포리
중기
(B.C.4000 - 2000)
즐문토기
= 빗살무늬 토기
= 기하문 토기
빗살문·기하문 등 어골문이 새겨진 타원형의 회색토기로 스칸디나비아에서 내몽고·시베리아·연해주·한반도에 분포 일본의 조몽)토기로 연결됨.
 해변·강변의 어로민이나 수렵민이 제작.
 압록강·두만강·대동강·낙동강·한강 등에서 집중적으로 발견
회색으로 된 사토질 토기이며
서울 사동
경기 사리
평남 호리
부산 삼동
웅기 포리
후기
(B.C. 1800)
󰀻 평저즐문토기
= 변형즐문토기
뇌문(回字)토기
(번개무늬토기)
파상문토기
(물결무늬토기)
중국 채도문화의 영향을 받았고, 평평한 밑바닥이 특징.
B.C. 10C에 나타난 무문토기인에게 흡수됨
황해도 봉산지탑리에서 탄화된 조수수가 출토
농경이 시작되었음을 입증
사동, 궁산리
황해도 탑리
부산 대동
부천
춘천

댓글 없음:

댓글 쓰기